마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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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 평등과 불평등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9-04-18 / 조회수 : 118

 

우리들이 세상을 살악가다 보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런지, 놀랄만큼 서로 다 다릅니다.

하기야 '사돈의 풍습은 오이 먹는 법도 다르다'고 하듯 사는 방식도 다 다르니 모습이 다른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들을 하고 살아가다 보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성형수술을 한다, 화장을 한다, 거울을 들여다 본다, 법석을 떠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고,

이렇게 태어나는 것 조차 공평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늘 실패만 하고 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수수께끼 같은 문제는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전에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사에 의문을 갖고 있던 '밀린다 왕'이라는 사람이

'나가세나 존자'라는 스님에게 묻는 내용이 경전에 전해오니 말입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사람은 다 어찌 모습이 똑같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단명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병이 많고,

또 어떤 사람은 못생기고 어떤 사람은 잘 생겼습니까. 어떤 사람은 악한데 왜 부자인지요.

똑똑하고 어리석은 것은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왕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왕에게 질문을 합니다.

 

"모든 식물은 왜 똑같지 않습니까? 크고 작은 것도 그렇지만 어떤 것은 신맛이 나고 어떤 것은 단맛이 나오는데

또 어떤 것은 쓰고 어떤 것은 맵고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왕이 대답을 못하자 스님이 다시 답합니다.

 

"식물의 꽃잎과 줄기와 열매가 본래 씨앗 속에 숨어 있는데, 알맞은 조건에 이르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종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같은 종자라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불교에서는 한마디로 '업(業)'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인연법에 따라서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식물을 예로 든다면 종자인 씨앗을 '인(因)'이라고 하고, 장소라든지 토질 또는 양분 등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연(緣)'이라고 하는데, 이 '인'과 '연'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전생의 행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생에서 각기 다른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즉 전생 행위의 결과로 부잣집에 태어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생김새도 그렇게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런에 여기에서 아주 굳어지는 것이 아니고 식물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사람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부자도 망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도 잘 살다보면 부자가 되지 않습니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업이 결정을 지워줬다면 미래의 나는 오늘의 행동이 결정을 지어 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이 어렵더라도 내일의 희망을 위해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파일 첨부파일 20181105_203526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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