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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적인 삶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9-01-11 / 조회수 : 135

 

오늘은 대승과 소승에 관한 말씀을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대승(大乘)’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돼 버렸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대승’은 불교 용어라는 사실입니다. 또 정치인들이 과연 대승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국민들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대승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대승, 대승 하지만 대승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법화경》 〈비유품〉에 보면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는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탐욕심이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정작 그 불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리 심각한지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심각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등장시킵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그 집에 불이 납니다. 아이들은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어린이들에게 지금 즐기고 있는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실어 놓은 수레가 밖에 있으니 나가서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합니다. ‘수레는 양이 끄는 것도 있고 사슴이 끄는 수레도 있으며, 소가 끄는 수레도 있으니 마음대로 골라 가지고 놀라.’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비로소 밖으로 뛰어 나와 불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수레들 가운데 양과 사슴이 끄는 수레는 혼자만이 탈 수 있고, 소가 끄는 수레는 여럿이 탈 수 있는 것이니, 요즘말로 하면 대형승합차 정도가 되겠지요. 소형승용차에 대비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승과 소송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유하자면 소승이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고, 대승은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의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혼자만 잘 살자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는데,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 욕심만 부리다 욕심으로 죽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대승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은 선거가 있을 때만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굽신 거리며 90도 각도로 인사합니다. 그 때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은 그야말로 대승적인 견지에서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면 많은 정치인들은 제가 잘나서 당선된 줄 알고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직원들이 애를 쓰고 소비자들이 나선 덕분에 돈 좀 벌고 사는데, 그 사실을 잊고 제가 장사를 잘 한 덕분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다 소승적인 입장인데, 막상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소승적인 것은 아예 발을 붙이지도 못하게 했는데, 저희들이 소승입네, 대승입네 하고 다투는 경향도 있습니다.

함께 잘 살자고 하는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또 그것만이 진정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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